부석사(浮石寺)
부석사 인근으로 지나는 중앙고속도로를 일 년에 수 차레 통행하면서도
늘 바쁜 일정으로 다니느라 부석사 이정표만 보고 지나다녔는데,
고향 친구님네 잔치에 다녀오는 길이 부석사 탐방 기회가 되었다.
부석이 어떻게 떠있는 것처럼 보일까 하는 궁금증을 풀었고,
무량수전을 비롯한 사찰 경내를 둘러보았으며,
부석사에 관한 여러 자료들을 찾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 2018년 6월 10일, 일요일에 -
▼ 부석(浮石): 선묘 설화와 부석사 사찰 이름의 유래가 됨. 공중에 떠있는
듯이 보여서 부석이 아니라 부석사 창건 시에 선묘 아가씨의 화신인 용이 이
바위를 세번 들었다놨다 하여 부석이라 함.
선묘설화[善妙說話]: 《삼국유사》에 의상(義相)이 당나라에 가서 공부할 때 양주성에 있는 어느 신도의 집에 머물게 되었다. 집주인의 딸 선묘가 의상을 사모하였으나 의상은 의연하게 대하였다. 선묘는 의상의 굳은 의지에 '영원히 스님의 제자가 되어 공부와 교화, 불사에 도움을 드리겠다'는 원(願)을 세웠다.
공부를 마친 의상은 그 신도의 집에 들러 인사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선묘는 미리 준비한 법복과 여러 가지 용품을 함에 담아 해안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의상이 탄 배는 벌써 멀리 사라져가고 있었다. 선묘는 가져온 함을 바다로 던지며 배에 닿기를 기원하고, 용으로 변하여 대사를 모시고 불도를 이루게 해달라는 주문을 외웠다.
신라에 귀국한 의상은 중생을 교화하던 중 676년(
문무왕
16)
태백산
의 한 줄기에 절터를 발견하였다. 사람들은 산적이 들끓는 곳이라 하여 만류했으나 의상은 직접 산적들을 만나 선하게 살 것을 당부하고 절을 짓게 해 달라고 하였다. 산적들은 화가 나서 의상을 죽이려 하였다.
이때 갑자기 선묘룡이 나타나 번갯불을 일으키고
봉황
이 나타나 큰바위를 세차례나 공중에 들었다 놓았다. 이에 놀란 산적들이 굴복하고 모두 의상의 제자가 되어
불사
를 도왔다. 돌이 공중에 떴다고 해서 절 이름을 부석(浮石)이라 짓고
봉황
이 나타났다 해서 산 이름을
봉황
산이라 불렀다.
부석은 부석사무량수전 서쪽 암벽 밑에 있으며, 선묘룡은 주불 아래 있는
석등
밑에 묻혀 절의
수호신
이 되었다. 1967년 5월 신라오악학술조사단이 무량수전 앞뜰에서 이
설화
를 뒷받침하는 5m 가량의 석룡 하반부를 발굴한 바 있다. - 출처: 두산백과 -
▼무량수전(無量壽殿):국보 18호, 안동 봉정사 극락전의 건축 연대가 확인되기
이전까지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유명하였음.
*부석사의 문화재: 무량수전(국보 제18호)
무량수전앞 석등(국보 제17호)
조사당(국보 제19호),
소조여래좌상(국보 제45호)
조사당벽화(국보46호)
석조여래좌상(보물 제220호)
삼층석탑(보물 제249호)
당간지주(보물제255호)
고려각판(보물 제735호)
부석사[浮石寺]는 한국
화엄종(華嚴宗)의 근본
도량(根本道場)이다. 676년(신라 문무왕 16)
의상(義湘)이 왕명을 받들어 창건하고, 화엄의 대교(大敎)를 펴던 곳으로, 창건에 얽힌
의상과 선묘(善妙) 아가씨의 애틋한 사랑의 설화는 유명하다. 1016년(고려 현종 7)에 원융국사(圓融國師)가 무량수전(無量壽殿)을 중창하였고 1376년(우왕 2)에 원응국사(圓應國師)가 다시 중수하고, 이듬해 조사당(祖師堂)을 재건하였다. 그 후 여러 차례 중수와 개연(改椽)을 거쳐 1916년에는 무량수전을 해체 수리하였다.
경내에는 무량수전(국보 18)·조사당(국보 19)·소조여래좌상(塑造如來坐像:국보 45)·조사당 벽화(국보 46)·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17) 등의 국보와 3층석탑·석조여래좌상·당간지주(幢竿支柱) 등의 보물, 원융국사비·불사리탑 등의 지방문화재를 비롯하여 삼성각(三聖閣)·취현암(醉玄庵)·범종루(梵鐘樓)·안양문(安養門)·응향각(凝香閣) 등 많은 문화재가 있으며 또 신라 때부터 쌓은 것으로 믿어지는 대석단(大石壇)이 있다.
은 제자가 3,000명이나 있었다고 하며 그 중에서 10대덕(十大德)이라 불리는 오진(悟眞)·
지통(智通)·
표훈(表訓)·진정(眞定)·진장(眞藏)·도융(道融)·양원(良圓)·상원(相源)·
능인(能仁)·의적(義寂) 등은 모두 화엄을 현양(顯揚)시킨 승려들이었다.
이 밖에도 《
(宋高僧傳)》에 그 이름이 보이는 범체(梵體)나 도신(道身)및 신림(神琳) 등도
의상의 훌륭한 제자였으며
의상이후의 부석사와 관계된 고승으로는
혜철국사(惠哲國師)·
무염국사(無染國師)·징효대사(澄曉大師)·원융국사·원응국사 등이 그 법통을 이었다. - 출처: 두산백과 -